영화관에 갔다가 우연히 다큐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예고편을 보고 개봉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책, 도서관 그리고 뉴욕이라니, 이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종합선물세트다.
뉴욕에 갔을 때 독립서점을 찾아다니고, 뉴욕공립도서관의 엄청난 자료들을 살펴보는 일이 보물 찾기처럼 설렜었다.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을 다큐 <뉴욕 라이브러리에서>가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남다른 연출
123년의 역사, 92개의 분점, 12주간의 기록 그리고 206분의 상영시간.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러닝 타임이 무려 3시간이 넘는다.
영화 보기 전 반드시 잠을 푹 자고 맑은 정신을 준비할 것! 충분한 수면 후에 보기만 한다면 특히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들, 도서관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볼거리, 생각거리들이 많은 유익한 다큐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다른 다큐와는 조금 다르다. 내레이션, 배경음악, 인터뷰 등이 없고 철저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뉴욕 공립도서관이라는 공간과 그 속의 사람을 담는다. 도서관 관계자들의 회의, 독서모임, 강연을 짧게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담아서 꽤 긴 시간을 할애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영화를 보는 관객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강연을 듣는 청중 중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즉, 졸기 시작하면 잠을 번쩍 깨워줄 어떤 극적인 전개도 음향 효과도 없다는 말이다.
>
도서관이란 무엇일까?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은 도서관 직원들의 회의다. 도서관의 예산, 기금마련,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한다.
인상적인 것은 회의가 열기를 띠며 진행될 때마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서로 계속 상기시켜준다는 점이다.
'도서관이란 무엇일까?' 도서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도서관과 그들의 역할이 달라진다. 도서관을 책을 보관하는 장소로 정의하면 그저 건물에 불과하고,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대체되는 미래에는 필요가 없다.
하지만 뉴욕 공립 도서관의 직원들은 도서관을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정의하고, 시민들의 삶과 지역 사회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사서들의 이야기에서 느껴진다.
보물창고 같은 세계 최대 규모의 무료 그림 대출관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도서관에 쌓아온 자료에 대한 자부심도 컸다. 멋진 외관으로 유명한 맨하튼 본관 도서관 맞은편에도 작은 공립 도서관이 있다.
외관은 평범한 빌딩이지만 그 속은 누구나 자기만의 보물을 찾을 수 있는 보물창고가 있다. 바로 수 백 만점의 사진, 신문기사, 잡지, 그림 자료들이 주제별 파일로 정리되어있는 '그림 컬렉션' 공간이다.
큰 기대 없이 여기에 들렀다가 문 닫는 시간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있었던 기억이 있기에, 영화 속에서 이곳을 소개하는 직원의 한껏 올라간 어깨와 자부심 넘치는 눈빛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여긴 세계 최대 규모의 무료 그림 대출관이에요. 지난 100년간 뉴욕의 모든 예술가가 여길 이용했을 겁니다. 앤디 워홀도 우리 걸 많이 훔쳤어요."
특히 창작자, 예술가, 기획자와 같이 뭔가 새로운 것,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100년의 자료가 모여 있는 영감의 바다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뉴욕에 간다면 다큐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보고 중후하고 멋진 뉴욕 공립도서관 본관을 구경하고, 건너편 건물에 있는 '그림 컬렉션'에도 꼭 들러서 보물 같은 영감을 발견하는 기쁨을 즐겼으면 좋겠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Ex Libris - The New York Public Library 2018) 기본 정보]
- 개봉일 : 2018년 10월 11일
- 장르 : 다큐멘터리
- 감독 : 프레더릭 와이즈먼
- 러닝타임 : 206분
-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보러가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 이동진 영화 평론가 | 톡이나 할까 | 어른들의 동화 같은 대화
- 비움과 채움 북유럽 | 김은희 작가 추천책 (feat. 장항준 감독)
- 김영하 작가 유 퀴즈 온 더 블럭 | 이야기꾼의 글쓰기, 스토리텔링 노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