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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알쓸신잡3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매주 () 910분 방송 tvN

 

  <알쓸신잡3> 2회에서는 4명의 잡학박사들이 아테네 시내를 벗어나 살라미스 섬(유시민), 에기나 섬(김영하), 크레타 섬(김진애), 델피(김상욱)를 여행한다. 그리고 그날 밤 피레우스 항구에 있는 가게 식탁에 둘러 앉아 하루 동안 모아 온 수다거리를 잔뜩 풀어낸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는 오늘날의 일타강사? 소크라테스는 정말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나? 과학자는 현대의 신탁자? 바다를 보고 기분이 좋은 건 마케팅 때문? 그리스 조각상은 왜 남자만 누드인가? 박사들의 맛집 찾는 깨알 비법까지 네버엔딩 수다가 이어진다. <알쓸신잡3> 2회의 수다에서는 유독 그들의 '시선'에 마음이 끌렸다.

 

"여행의 진가는 수백 개의 다른 땅을 같은 눈으로 바라볼 때가 아니라,

수백 개의 다른 눈으로 같은 땅을 바라볼 때 드러난다."

-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생각하는 이의 시선

  <알쓸신잡>의 매력 중 하나는 마치 수백 개의 다른 눈으로 같은 땅을 바라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평소 알고 있던 것도 잡학박사들의 눈을 거치면 다르게 보인다. 김영하 작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이야기를 사랑하는 소설가의 시선으로 흥미롭게 해석한다. <일리아스>는 그리스와 트로이의 잔혹한 전쟁이야기다. 트로이의 헥토르가 그리스 아킬레우스의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이자 아킬레우스는 분노하여 헥토르를 죽인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친구 무덤 주위를 달린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아들을 죽인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손에 입을 맞추며 아들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부디 시신을 돌려달라고 청한다. 프리아모스 왕에게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 아킬레우스는 감화하여 헥토르의 시신을 내어주고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열흘간 전쟁을 중단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런데 여기서 김영하 작가는 호메로스가 위대한 작가인 이유를 발견한다. "작가는 뭘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하지만, 뭘 안 쓰느냐도 작가에겐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에요." <일리아스>의 이야기가 더 진행되지 않고 거기서 끝남으로써 주제가 선명해진다. 분노로 시작해서 이 분노가 결국은 인간성에게 패배한다는 이야기. 실제 전쟁에서는 그리스가 승리했지만, 정신적인 승리는 인간의 품위와 위엄을 보여준 트로이의 프리아모스 왕과 문명세계 트로이임을 작가는 보여준다.

  김영하 작가의 깊은 사유와 통찰력 덕분에 잔혹한 전쟁 이야기 <일리아스>가 달리 보인다. 물론 그의 해석이 정답은 아니다. 문학에 정답이란 없으니까. <알쓸신잡>도 마찬가지다. <알쓸신잡>의 수다가 정답은 아니기에 모든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작진은 영하 '생각', 시민 '생각', 진애 '생각', 상욱 '생각'이라고 자막에 표시한다. 이건 어떤 생각하는 이의 시선이라고.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알쓸신잡>이 유익한 것은 수다 속의 정보덕분이기도 하지만, 같은 것도 자기만의 관찰과 사유로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하는 재미를 알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듣는 이의 시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해석하는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유시민 작가는 나도 <일리아스>를 읽었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줄은 몰랐다며 감동했다고 말한다. 이 말을 할 때 유시민 작가는 진심으로 놀라고 감탄한 눈빛으로 김영하 작가를 바라본다. <알쓸신잡>을 재미있게 보는 시청 포인트 중 하나는 한 명의 박사가 말할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다. 카메라도 그들의 반응을 놓치지 않는다. 말하는 이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듣는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는 화면에 담는다.

  나와 같은 생각을 다른 이가 말해줄 때는 눈에 웃음을 담고 고개는 연신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다. 생각지도 못한 통찰에는 오~ ~ 라는 소리가 들리는 눈빛으로 감탄을 보낸다. 나와 다른 의견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더 뚫어져라 보며 반박할 이야기를 생각하는 진지한 눈빛도 흥미롭다. 얼마나 서로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는지 수다의 후반부로 갈수록 김진애 박사의 의자는 점점 카메라를 등지고 수다박사들을 향해 돌아가 있다.

  <알쓸신잡>의 수다가 재미있는 것은 '마주 대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화의 본질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알쓸신잡>은 말 잘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잘 들어주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하다. MC도 무서워서 말릴 수가 없는 네버엔딩 수다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단절되어서는 불가능하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말하는 사람도 신이 나서 이야기 할 수 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시선이 서로를 향하는 그들의 대화가 다음 여행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얼마나 더 흥미진진해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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