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세교
출연: 나문희, 이희준, 최원영, 박지영, 이진주
뺑소니 사고 목격자가 치매 환자라면?
평화롭던 충청도 금산 마을에 뺑소니 사고가 일어났다. 피해자는 보험회사 에이스 두원(이희준)의 어린 딸 보미. 유일한 목격자는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문희(나문희)와 강아지 앵자뿐이다.. 잠시 의식을 회복한 보미가 남긴 한마디와 믿어도 될지 모를 문희의 기억 조각들에 의지해 아들 두원과 어머니 문희는 뺑소니범을 찾아 나선다.
웃음은 필수, 울음은 선택
같은 소재도 어떻게 풀어서 연출하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장르가 달라진다. 영화 <오! 문희>는 무거울 수도 있는 치매, 뺑소니, 장애 등의 문제를 가족애로 풀어간다. 하지만 가족애로 신파를 그리지는 않는다. 영화 <오! 문희>의 장르는 코미디니까. 장르에 충실하게 웃음이 먼저다. 그리고 중간중간 터지는 울음은 강요가 아니라 관객의 선택사항이다.
영화 초반의 한 장면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치매에 걸린 문희(나문희)는 더 이상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뒷산 나무 위에 올라가 목을 매려고 한다. 그런데 문희의 조카 송원장(박지영)과 손녀 보미(이진주)는 늘 있는 일이라는듯 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평화롭게 소풍을 즐긴다. 소식을 듣고 도착한 아들 두원(이희준)도 옆 나무에 줄을 걸고 '엄마 이 나무가 더 튼튼한 것 같다'며 능청스럽게 문희를 놀린다. 충청도식 유머가 생각났다. 충청도에서 택시 문을 쾅하고 세게 닫으면 택시 기사님들이 대놓고 지적하는 대신에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걸로 문 부서지것슈?"
소소한 반전의 재미
범인을 찾는 영화에서 관객이 결국 궁금한 것은 '그래서 뺑소니 범인이 누구냐?'일 것이다. 범인은 원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인물로 마지막에 밝혀질 때 재미있는 법. 그런데 영화 <오! 문희>는 범인의 정체보다 문희(나문희) 할머니가 치매라는 설정에서 오는 소소한 반전이 더 예상치 못한 감동과 재미를 준다. 영화 초반에 아무렇지 않은 듯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후반에 의미 있게 쓰인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영화 <오문희>(Oh! My Gran)의 편안함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의 힘이 크다고 느껴진다. 문희 할머니와 아들 두원, 손녀 보미, 조카 송원장 그리고 강아지 앵자까지 충청도 농촌 어딘가에서 정말 살고 있는 가족 같다. 특히 강아지 앵자는 어떻게 연기를 했을까. 상황에 맞는 앵자의 표현 연기가 대단하다. 영화 <오! 문희>는 특별한 장치가 있는, 특별한 반전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 속의 상처, 사랑을 담고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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