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동생과 사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른이 되면'에는 장혜영 감독의 인상적인 내려이션이 나온다. 내레이션을 들으며 두 가지 마음이 떠오른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
만약 누군가 열세 살의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너는 이제 가족들과 떨어져서
외딴 산꼭대기의 건물에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과
평생을 살아야 해.
그게 네 가족들의 생각이고
너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어.
이게 다네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야.
세상에 태어난 것도, 장애를 가진 것도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는데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조차 선택할 수 없다면 '왜?'라는 원망 섞인 물음이 계속 맴돌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더 이상 집에서 돌보는 것이 불가능해 시설로 보내며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복잡할지 생각하게 된다.
장혜영 감독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생각 많은 둘째 언니'에서 '발달장애인의 형제자매로 산다는 것'이라는 영상을 보면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다. '살면서 한 번만이라도 내 삶의 중심에 나를 놓고 싶다', '나의 정체성이 장애인의 언니였다'는 말이 가족들의 고충을 짐작하게 한다.
발달장애인 동생과 살기로 했다
내부 고발을 통해 동생이 살던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 사실이 알려졌다. 그런데 대책 회의에서 다른 보호자들이 보인 반응에 장혜영 감독은 동생 혜정 씨를 집으로 데려 오기로 마음먹는다.
'가족도 화가나면 때릴 수 있는데 남이 돌보다가 너무 힘들어서 몇 대 때린 것을 문제 삼지 마라. 문제가 세상에 알려져서 시설이 없어지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우리는 집에서 키울 수가 없다. 그러니 문제를 공론화 하지 마라' 그렇게 18년 만에 장혜영 감독은 동생 혜정 씨와 한 집에서 같이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회적 시스템이 너무도 부족했다. 장애인 돌봄은 가족 중에서도 특히 엄마 그리고 언니, 누나, 여동생과 같은 비혼 여성의 몫으로 돌아갔고, 보호자의 희생은 당연시 되었다.
'왜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할까?' 장혜영 감독은 묻는다. 이것이 장애인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육아, 치매환자 돌봄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혼자 짊어지기에 그 짐이 너무 버겁다.
개인의 힘으로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사회 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이 복지제도의 존재이유이다. 개인, 가정의 붕괴는 사회 문제로 이어지고 사회적 비용증가는 다시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장애가 없는 사람도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런데 장애인에게는 그런 자립을 강요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장혜영 감독은 말한다.
장애인을 잘 대하는 방법
장애인을 잘 대하는 방법이 있냐는 질문에 비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이 따로 없듯,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을 뿐이라는 대답. 살면서 발달장애인과 소통이 안 되었던 것보다 비장애인과 소통이 안 될 때가 더 많았다는 장혜영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방송을 보면서 장애인 문제는 결국 인간의 문제로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가진 특별한 존재다.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키 큰 사람이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내려주기도 하고, 힘이 센 사람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주기도 하고, 앞에 가는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기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배려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함께 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