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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팔이 하상욱 영업비밀

  하상욱은 자신을 시를 팔아먹고 사는 '시팔이'라고 소개한다. 사실 시팔이라는 이름 전에 '시자이너'라는 이름을 먼저 지었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는 글 쓰는 방식이 디자인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SNS에서 스크롤을 내리는 사람들이 순간 멈추는 곳은 시각적으로 정돈된 이미지나 텍스트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디자인의 개념을 시에 적용했다.

  그래서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종종 띄어쓰기를 포기한 시적허용을 사용한다. 시를 쓰면서 내용뿐만 아니라 어떻게 시각적으로 전달되는지까지 고려해서 글자 수, 줄 바꿈도 연구한다.  

하상욱 
그게 시냐?


네!
시입니다...
좋은 시는
아닐 수도
있겠죠.

 

  때때로 띄어쓰기도 무시하고 길지도 않은 그의 시는 시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하상욱은 특별히 부정하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

  자신의 시를 이해하고 소비해주는 독자들을 위해 충실히 글을 쓸 뿐이다. 쉬운 접근 빠른 공감이 그의 시의 장점이자 특징이니, 심오한 시는 예술가들의 몫으로 남겨두겠다고 한다.

"하상욱 걔는 
새로운 생각이 없어."


"들켰네ㅋ"

  또 다른 평가는 새로움이 없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생각만 있었던 것', 많은 사람들이 문장으로 정리 못해서 표현할 길이 없어 답답했던 생각들을 짧은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 자신의 시라고 하상욱은 말한다.

  너무 새로운 나만의 이야기는 나만의 이야기일 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 우리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꿈을 꾸지 마세요. 가지세요.

  꿈은 '대출'같다고 하상욱은 말한다. "꾸고 나면 갚기가 힘들어" 꿈의 무게는 때론 너무 무겁다. 그래서 그는 "꿈이 뭐냐?"는 질문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대답을 해도 "야 그게 무슨 꿈이야?"라는 말이 돌아오거나, 꿈이 없다고 하면 질책이 따른다.

  중학생 멘토링을 했는데 한 학생이 꿈이라는 말이 너무 무섭고 싫다며 울었다고 한다. 꿈이 뭐냐는 부모님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더니 꿈도 없냐며 꾸중과 비난이 쏟아졌단다. 주입식 교육보다 나쁜 것은 주입식 꿈이다.

  글을 쓰고 있지만 하상욱의 꿈이 작가는 아니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꿈이라는 틀에 갇혀, 꿈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포기했다.

  작가가 꿈이었다면 그 무게감에 페이스북에 첫 번째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꿈이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자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다. 좋은 운동, 음식도 과하면 병을 유발하듯 꿈도 너무 무리하면 삶이 상한다.

  강연에서 소개해준 영화 <아이, 로봇>에서 윌스미스와 로봇이 한 대화와 이규경 시인의 시 <용기>가 인상적이었다. 꿈, 용기, 포기에 대한 다른 시선이 좋은 자극이 되었다. 

 

어쩌다 어른 하상욱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건 나도 그리겠는데' 그럴 때 시야를 좀 넓혀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내가 보고 있던 그 작품에서 눈을 떼고 한 걸음 물러나서 전시관 전체를 한 번 둘러본다.

  스케치 과정, 초기 작품, 유작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내가 보는 것은 순간이지만 작가는 이 한 작품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시도하고 수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넓은 전시관을 채울 만큼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방금 본 그 그림이 달리 보인다. 설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취향으로 그 그림을 여전히 높이 평가할 수 없을지라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이 사람은 그렸고, 나는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작품자체에는 동감하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는 사실에 감동할 수 있다.

  <어쩌다 어른> 하상욱 편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위트 있고 짧은 글이라 쉽고 빠르게 그리고 재미있게 쓰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팔이 하상욱의 영업비밀을 듣고 나니 짧은 글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보기 좋은, 읽기 좋은 시가 될지 글자 하나 띄어쓰기 하나를 두고 시각적인 고민을 한다. 누군가를 공격하는 글이 아니라 공감 받는 글을 쓰기 위해 금주를 하고 내용에 대한 자기검열도 잊지 않는다.

  시팔이답게 시를 잘 팔기위해서 책의 표지, 가격, 마케팅에 대한 연구도 한다. 글을 쓰는 것만큼 덜어내는 과정도 힘들다. 수많은 생각을 짧은 글에 담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듣고 나니 그의 시가 결코 짧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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