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아(吾喪我). "나를 버려라" 장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에게도 정립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도 유동적인 상태의 많은 생각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쪽저쪽 저울질을 하고 있지만 고정관념이라고 불릴만한 확고한 생각들도 존재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확고한 생각들이 더욱 많아질 것 같다. 그래서 장자의 말처럼 나를 버리는 것이 더욱 힘들어지지 않을까 약간의 걱정도 된다.
각자 인생 경험 속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아집으로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고 이러한 갈등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 문제로 나아간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 중의 하나가 바로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 무아 즉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를 버린다는 것은 내 생각의 틀을 깨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해체된 생각 속에서는 나도 너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서로의 의견으로 인한 갈등도 없을 것이다. 생각과 이해의 폭이 넓어져 그동안 갈등했던 부분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들을 보면 대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부족한 데서 일어나기 때문에 사회문제도 나를 버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정치에서 여당과 야당은 서로 견제하는 역할을 넘어 서로를 공격하기에 급급하다. 무조건 반대의 목소리만 내고 자신들의 주장만이 타당하고 상대의 이야기는 가치도 없다는 듯한 태도 속에서는 토론은 없고 비난만 존재한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본다면 타협점도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노력이 부족해 보인다.
물론 나를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생활 습관 하나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데 살아온 시간 동안 단단하게 굳어진 생각의 틀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또한 모든 생각을 해체한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모든 생각이 해체되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줄 수 있을지 의문과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잘못하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허무주의에 빠져 세상에 무관심해 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이러한 걱정과 우려를 없애려면 장자가 말하는 나를 버린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장자 또한 자신의 생각이 왜곡되어 사람들이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장자가 말하는 나를 버린다는 것이 세상에 무관심해지고 모든 생각과 옳고 그름의 판단 자체를 버리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각은 해체하되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마음속에 담고 있어야할 인간존중과 같은 절대 가치는 해체시키지 않아야 한다. 다만 그 위에 쌓인 이기적인 기준, 갈등을 야기해왔던 생각들은 과감히 해체시키라는 것이다. 나를 고집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는 없다. 일단 나를 버렸을 때 상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 나를 버림으로써 진짜 나와 상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고정관념, 아집이라는 틀이 없는 오상아(吾喪我)의 상태에서 우리가 바라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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