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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Tunnel, 2016)

category 영화 2017. 3. 10. 09:02

감독: 김성훈

출연: 하정우(정수), 배두나(세현), 오달수(대경)

  딸의 생일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가던 정수(하정우)는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 안에 갇힌다. 재난의 전조증상을 보여주고 영화의 중반 즈음 사고가 발생하는 보통의 재난영화와 달리 <터널>에서는 영화 시작 후 불과 몇 분 만에 재난이 발생한다.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정수(하정우)가 터널 밖 세상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배터리가 78% 남은 휴대폰 하나였다. 터널 밖에서는 구조대가 출동하고 정부는 긴급 대책반을 만든다.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도 사고 현장으로 달려온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유일한 연락 수단인 휴대폰의 배터리는 줄어들고, 먹을 수 있는 물도 바닥을 보인다. 터널 속에서 구조만을 기다리는 정수와 달리 터널 밖에서는 구조를 둘러싼 갖가지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영화는 실제 우리나라의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흔히 접했던 장면들을 연출하며 풍자한다. 단독 보도, 특종에만 집중하는 언론, 부실시공으로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시공업체는 실제와 다른 엉터리 설계도로 구조작업에 까지 혼선을 초래한다. 노란 잠바를 맞춰 입고 나타난 장관과 관계자들은 사건 현장 앞에서 찰칵, 정수의 아내(배두나)와 찰칵 기념사진 찍기에 바쁘다. 영화 <터널>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하는 터널 안의 정수와 터널 밖 사람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터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는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이다. 이상적인 히어로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이면서 정의로운 캐릭터였다. 정수(하정우)가 갇힌 터널 근처에서 공사 중이던 제2터널의 공사재개를 주장하는 사람이 예전에 도롱뇽 한 마리 때문에 공사를 중단해서 국가경제 손실이 얼마였냐?’라며 사람들을 설득한다. 그러자 대경(오달수)이 조용히 손을 들고 말한다. “저기요... 자꾸 까먹는 것 같은데, 터널 안에는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요, 사람.” 정수 역을 맡았던 배우 하정우도 뉴스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대경(오달수)의 이 대사를 꼽았다. 사람들이 숫자논리에 빠져 이제 지쳤다며 구조를 그만하자고 할 때, 지금 가장 지쳐가고 있는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이 터널 안에 갇혀있는 정수(하정우)라는 사실을 대경(오달수)은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모두가 포기할 때도 마지막까지 정수의 생존 가능성과 구조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경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간의 가치를 상기시켜준다. 인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가 돌아보게 한다. 돈을 아끼려고 기업은 부실시공을 하고, 부실시공을 관리 감독해야할 정부는 제 역할을 못했다. 그래서 터널이 무너졌다. 국민이 갇혔다. 그럼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당연히 국민을 구해야 한다. 그것이 단 한 명의 국민일지라도. 그런데 구조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다른 경제적인 손실도 있으니 사람 한 명 구하자고 이러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런 논리로 정수의 아내 세현(배두나)에게 공사재개 동의서를 내민다. 그 동의서는 살인 동의서와 마찬가지다. 돈 때문에 사람을 터널에 갇히게 해놓고 돈 때문에 구해줄 수도 없다고 한다. 터널 속 한 사람이 내가 될 수도 나의 가족, 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문제다. 돈의 논리로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를 어떤 국민이 믿고 살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꾸 까먹는 것 같다. 사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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