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앤디 해밀턴, 가이 젠킨
출연 : 로자먼드 파이크(아비), 데이비드 테넌트(더그), 빌리 코놀리
할아버지의 생신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아빠 더그와 엄마 아비 그리고 천방지축 삼남매는 스코틀랜드로 향한다. 사실 더그와 아비는 이혼 직전 별거 중인 부부다. 하지만 암투병 중인 아버지께서 충격 받으실까봐 별거 사실을 숨기기로 한다. 스코틀랜드로 가는 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발랄한 삼남매의 입단속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생신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할아버지와 삼남매는 해변으로 간다.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일어난 사건에 삼남매는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가족들과 영국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해피 홀리데이>는 많은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에 어울리는 가족영화이다. 주연은 엄마 아비역의 로자먼드 파이크와 아빠 더그 역의 데이비드 테넌트이지만 영화를 본 후에는 귀여운 삼남매가 이 영화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별거 중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겉으로는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를 표현하는 특성을 한 가지씩 가지고 있다.
첫째 로티는 리스트를 작성한다. 항상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엄마, 아빠,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기록한다. 엄마, 아빠가 스코틀랜드로 출발하면서 할아버지에게 별거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을 때도 어떻게 말해야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아야 할지를 리스트로 작성했다. 혹시 기억하지 못해서 실수 할 수도 있다며. 로티는 거짓말하는 어른들에게 실망하며 자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강박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기록한다. 실수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혹은 사람들이 거짓말할 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리스트를 작성하는 로티를 보고 할아버지는 이제 공책에 적는 일은 그만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나쁜 일은 적어 놓으면 더 나쁘게 보이고, 가슴에만 담아 뒀다 보내는 법을 배우는 편이 더 좋다고 이야기 한다.
둘째 믹키는 신화에 빠져있고 돌직구 직설화법을 구사한다. 어른들이 숨기라는 이야기들을 왜 그래야하는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쿨하게 쏟아낸다. 덕분에 본인은 속 시원하지만 주변 사람들 특히 어른들은 너무 솔직한 말에 당황한다.
막내 제스는 숨을 참는다. 마음에 안드는 일이 생기면 숨을 참는다. 제스가 숨을 참자 당황하는 엄마를 보며 큰엄마는 애가 숨을 참아봤자 얼마나 참겠냐며 귀여운 반항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하지만 제스는 기절할 때까지 숨을 참는, 한다면 하는 끈기 있는 아이다.
<해피 홀리데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짓말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태도에 실망하고 화가 나 있다. 첫째 로티는 할아버지에게 “엄마, 아빠는 거짓말만 하고 서로 믿지도 않아요. 그래서 화가 나요.”라고 고민을 털어 놓는다. 할아버지는 “나도 가족들 때문에 화가 나곤 했다만, 그 사람의 천성에 화를 내는 건 소용없더구나... 사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바보들이란다. 그러니 편견을 짓거나 누구와 싸우지 마라. 왜냐하면 결국에는 부질없으니까.”라고 위로한다. 엄마, 아빠, 어른들 그리고 아이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래서 실수하고 서로 다른 모습에 실망도 할 수 있는 거라고.
할아버지는 영화에서 삼남매와 대화를 하는 유일한 어른이다. 여기서 ‘대화’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에 대답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어른들이 하지 않는 행동이다. 할아버지와 떠난 해변 나들이에서 있었던 엄청난 일에 대해 엄마가 묻자 막내 제스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이야기는 됐고, 엄마가 원하는 부분만 빨리 이야기하라고 재촉한다. 그러자 제스는 말한다. “엄마가 들으면 말할게.”
영화 <해피 홀리데이>는 가족 사이에 잘 듣는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 보여준다. 잘 들어야 상대의 생각을 제대로 알고 내 생각을 잘 말할 수 있다. 특히 어른들이 주도하는 일방적인 대화는 아이들과의 소통을 방해한다. <해피 홀리데이>의 삼남매는 리스트 작성하기, 돌직구 직설화법, 숨참기로 불만과 불안을 표출한다. "우리 이야기도 들어주세요~!"라고.
잘 들어주지 않는 상대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어른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무시하는 큰아빠 때문에 큰엄마는 우울증을 앓고 폭력성이 폭발해 유튜브에 나오기도 한다. 서로 이야기는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하던 삼남매의 엄마, 아빠는 별거를 하고 이혼을 준비했다. 삼남매의 위험천만, 엉뚱발랄한 그렇지만 진심이 담긴 해변에서의 행동 덕분에 온가족은 서로의 진심을 듣고 인정한다. 영화 <해피 홀리데이>는 현실이라면 위험하지만 영화라서 용서되는 장면들도 있고, 큰 반전은 없는 잔잔한 영화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친척들과 온가족이 모여서 대화를 할 일이 많은 명절에 어떻게 소통해야할지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명절에 보면 좋을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