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시성'은 645년에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나라 군대를 물리친 '안시성 전투'를 그리고 있다. 당시 고구려는 안으로는 왕권이 약화되고 밖으로는 신라에 한강을 빼앗기고, 당나라의 압박도 받고 있었다. 한편 당나라의 이세민은 형제를 죽이고 쿠데타를 통해 황제가 된 후, 정권의 정당성을 얻고 내부를 단결하기 위해 주변국들을 공격하고 정복했다.
고구려가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떻게 이겼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없다. 때문에 김광식 감독은 남아 있는 사료를 통해 최대한 고증하고, 그 외의 부분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연출했다.
영화에는 주필산 전투, 2번의 공성전, 토산 전투까지 4번의 전투가 나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군대를 끌고 토산까지 쌓고 싸우는 당나라 군대와 열세에도 포기하지 않고 활을 쏘고 칼을 휘두르는 고구려 군사들을 보면서 문득 궁금했다. '저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싸움에는 명분이 필요하다
당태종 이세민에게는 쿠데타 정권의 정당성과 내부 단결이라는 대내적 명분과 친당 정책을 펼쳤던 고구려 영류왕을 연개소문이 죽이자 이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대외적 명분이 있었다. 양만춘은 안시성 성주로서 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싸움에서 물러설 수 없는 이유였다.
그럼 군사들의 명분은? 처음에는 리더가 말하는 명분 아래 의기투합해서 눈앞에 몰려오는 적들과 싸워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해서 생각할 정신도 없다. 그런데 전쟁이 길어지고 엄청난 토산을 쌓기 위해 흙을 실어 나르면서 당나라 군사들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전쟁 중에 황당하게 흙으로 산을 만들면서 문득 궁금하지 않았을까.
"근데 우리 왜 싸우는 거야?"
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할수록 영화 속 리더 이세민의 명분은 처음과는 다르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개인적인 욕망으로 변질된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들을 공포와 처벌로 조종한다. 변질된 리더의 명분이 선명해질수록 군사들의 명분은 흐려진다.
반면 고구려의 양만춘은 이세민과는 다른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배우 조인성이 연기한 양만춘은 자신의 입신양명보다는 성주로서 성민을 지키는데 집중한다. 그래서 안시성 사람들을 돌아보며 군사들에게 외친다. "저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
양만춘은 고구려 군사들을 공포, 처벌, 보상으로 조종하지 않고 스스로 원해서 움직이도록 비전을 제시한다. 개인의 욕심에 눈멀어가는 리더가 이끄는 조직, 우리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는 리더가 있는 조직 중 어느 쪽에 속한 사람들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울까?
실제 역사에서 당태종 이세민과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이 안시성 전투에서 어떤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과는 별개로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이세민과 양만춘의 리더십은 성공하는 조직과 실패하는 조직의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군대뿐만 아니라 기업, 작은 조직에서도 리더는 '왜'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영화 안시성에서 발견한 성공하는 조직의 비밀 '골든서클'
미국의 전략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사이먼 사이넥은 '골든서클(golden circle)'이라는 개념을 통해 성공하는 조직의 작동원리를 설명한다. 골든서클은 가장 안쪽에 WHY라는 원, 그 바깥에 HOW라는 원, 가장 바깥쪽에 WHAT이라는 세 가지 원으로 이루어진다.
보통의 조직과 리더는 골든서클의 바깥에서 부터 what-how-why 순서로 생각하지만, 성공하는 리더와 조직은 골든서클의 중심부에서 부터 즉, why-how-what의 순서로 생각한다는 개념이다. 영화 <안시성> 속 양만춘은 어떤 상황에도 군사들이 의심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안시성을 지키지 못하면 사랑하는 우리 가족, 친구, 이웃이 죽는다'는 '왜(why)'를 먼저 제시했다.
그렇기에 안시성 사람들은 토산을 무너뜨리기 위해 판 지하굴이 허물어지는 순간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지지대를 부수기 위해 더 힘차게 망치질을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망치질이 사랑하는 가족을 지킨다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사이먼 사이넥의 책 제목처럼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영화 '안시성'은 보여준다.
- 감독 : 김광식
- 출연 : 조인성 (안시성 성주/양만춘), 남주혁 (태학도 수장/사물), 박성웅 (당태종 이세민), 배성우 (안시성 부관/추수지), 엄태구 (기마부대장/파소), 설현 (백하부대장/백하), 박병은 (환도수장/풍), 오대환 (부월수장/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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