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저와 나>는 인건비가 싼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는, 미국 플린트 지역의 GM 자동차 공장 폐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다. 1989년에 만들어진 영화 내용과 2017년 우리 사회의 모습이 같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낀다. 일자리를 잃은 플린트 지역 주민들에게 정부와 기업은 "희망을 가져라. 그리고 놀지 말고 일단 뭐든지 해봐라. 우리는 기회의 땅 미국에 살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시장은 유명 전도사를 불러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GM은 극장을 지어주며 힘들 때일수록 즐겁게 지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돈을 벌기위해 피를 팔고, 집세를 못내 쫓겨나는 암울한 일 뿐이다. 범죄율은 전국 최고로 치솟고, GM과 전미 자동차 노조는 실직자들을 교육해 감옥 교도관으로 취직시킨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노력은 없고 온통 미봉책뿐이다. 플린트 지역의 이야기는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과 닮아있다. 청년 실업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데, 정부와 사회는 노력하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청년들이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청년 실업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인식 변화와 현실적인 실천 노력이 필요하다.
청년 실업은 더 이상 청년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정부와 사회가 인식해야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청춘의 고뇌를 어루만져주지만 위로는 이제 충분하다. 마음의 위로와 함께 진짜 공감을 통한 해결책이 필요하다. 청춘은 힘들지만 그 끝에는 분명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대학을 가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입시전쟁을 치르고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정작 취업을 할 때가 되면 대학에서 공부했다고 요즘 젊은이들은 눈이 높아졌다며 취업 눈높이를 낮추라고 한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지금 청년들에게 단순히 눈을 낮추라고 하는 것은 대학에서 배운 것, 꿈, 앞으로의 생활을 포기하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물가는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신혼부부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신혼집을 마련하기도 힘들다. 양육비, 교육비 등 기본 생활비 또한 계속 오르고 있다. 낮은 임금으로는 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을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과 희망을 버린 7포 세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청년들은 포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을 정부와 사회가 인식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청년복지를 실시해야 한다. 청년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미래 한국을 위한 가장 수익성 높은 '투자'이다. 국가 경제를 책임져야할 우수한 인재들이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면, 인재 유출은 물론이고 국가재정이 어려워져 정부와 사회의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독일은 재정위기를 겪은 1970년대에도 청년복지를 실시했다. 가장 강력한 자원이 청년임을 인식한 것이다. 독일의 청년 정책은 초기 취업에 실패한 청년에게 일정 기간 취업 장려금 지원하고 무상등록금, 주거비 지원, 생활 자금 지원 등 청년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도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에 노력했다. 폭스바겐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공장 해외 이전 추진했다. 그러나 노사가 혁신적인 대타협 이루고, 해외 이전 대신 지역청년들을 위한 신공장을 설치했다. 신규채용, 직업훈련 제공. 우수한 인력 확보로 청년 소비자가 늘어났고 내수 시장을 지켜냈다. 청년 투자로 모두 승자가 된 사례이다.
현재 한국의 청년 실업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다쳐서 피가 철철 흐르고 뼈가 부러진 사람에게 곧 괜찮아질거야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노력하면 건강해질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긍정도 희망도 분명 필요하지만 제도적인 장치도 함께 필요하다. 피가 멈추도록 지혈을 하고 뼈를 맞추고 수술을 해야 더 빨리 건강해 질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라지만 제대로된 경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규칙도 필요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소도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은 사회이다. 개인의 노력과 정부, 사회의 구조적인 도움이 있을 때 청년 실업 문제도 해결되고 이러한 인재들의 제대로 된 활용으로 우리 경제, 사회도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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