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작가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읽으며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상실을 새삼 실감한다. 스릴러 소설도 아닌데 '입동', '노찬성과 에반', '건너편', '침묵의 미래', '풍경의 쓸모', '가리는 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차례로 읽으며 축축한 무서움이 느껴진다.
하늘빛의 산뜻한 책 표지와는 다르게 알맹이는 어둡고 암울한 회색이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 유일한 친구였던 강아지의 죽음과 맞닥뜨린 아이. 노인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이가 손으로 황급히 가린 것이 비명이 아니라 웃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엄마, 8년 연애의 끝을 마주한 연인, 다른 생명을 구하려다 죽은 남편을 떠올리는 아내.
소설 속 인물들은 일상에서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상실한다. 이런 상실이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현실에서 누구에게나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별일 없이 사는 평범한 하루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실은 엄청난 일이었다. 언제든지 무언가를 잃을 수 있는 무서운 삶을 겁도 없이 살고 있었다. 무심히 잊고 지내던 혹은 애써 외면해왔던 일상의 무서움을 책 '바깥은 여름'은 상기시킨다.
소설 입동
'바깥은 여름'의 첫 번째 소설 '입동'은 아이를 잃은 후 더 이상 평범한 하루를 살지 못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용하고 차분한 묘사가 부부의 위태로움과 슬픔을 더 아프게 전해준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입동 p20)
4인용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들과 밥을 먹고, 아이에게 숟가락질을 가르치고, 떼쓰는 아이를 혼내고, 어이없는 말대꾸에 웃기도 하던 사소한 시간들이 더 이상 사소하지 않은 간절한 시간이 되었을 때 부부는 바깥세상과는 다른 계절을 살고 있었다.
"가끔은 사람들이 '시간'이라 부르는 뭔가가 '빨리 감기' 한 필름마냥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입동 p21)
다른 시간을 사는 사람들
바깥 계절이 무더운 여름으로 바뀌어도 스노우 볼 안은 언제나 추운 겨울이다. 겉으로는 모든 이들이 같은 계절,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계절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사람의 계절과 바깥의 계절은 다르게 흐른다.
내 마음이 천국일 때는 세상이 매섭게 추워도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이 지옥일 때는 봄에 피는 예쁜 꽃도 따뜻한 바람도 모두 상처가 된다.
시차를 아프게 겪으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이의 시차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입동'에서 '다른 사람들은 몰라'라는 아내의 말을 같은 시차를 겪은 남편은 완벽하게 이해한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같은 사고로 동생을 잃은 누나와 남편을 잃은 아내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린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바깥은 여름>은 상실과 그 이후의 삶을 보여주지만 그들이 상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상실이 있기 전과 후는 결코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불편하고 무서워도 외면하지 않는 길 뿐임을 생각하게 한다.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