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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하셨습니다."

  의사의 이 한마디는 누군가의 삶의 끝과 죽음의 시작을 경계 짓는다.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 짧은 한마디를 내뱉지 않기 위해, 의사는 마지막까지 생명을 붙잡으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런 생과 사의 싸움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 응급실이다.

응급실의 지독한 하루 

  '지독한 하루'의 저자 남궁인은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다. <지독한 하루>는 그가 응급실에서 버텨낸 하루하루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책을 통해 엿본 응급실 의사의 하루에 버텨낸다는 표현 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없을 것 같다.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들이 살기 위해 고통을 견뎌내듯, 의사들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아비규환의 응급실에서 고군분투하며 매순간을 버텨내고 있었다.

  응급실은 흔히 '지옥'에 비유된다고 한다.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 복수가 차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배를 움켜지고 온 사람, 차에 치여 혹은 추락해서 으스러진 팔과 다리를 겨우 추슬러 실려 온 사람, 폭발사고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커멓게 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응급실이다.

  이들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부분을 읽다보면 응급실은 지옥이라는 비유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진짜 응급실에서 이 모든 상황을 목격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숨이 턱턱 막혔다. 그래서 지독한 하루를 끝내고 저자가 응급실 밖으로 나왔을 때 나도 지옥에서 함께 탈출한 것처럼 한숨이 쉬어졌다.

  그리고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싶었다.'는 그의 속마음이 이해되었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명을 가진 의사도 타인의 고통과 죽음 앞에서 아무리 담담한척 하려해도 무뎌질 수 없는 보통 사람이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악마를 보았다

  지옥 같은 응급실에는 악마도 나타난다. 생후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온 몸이 골절되고, 머리가 함몰되어 응급실에 왔다.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아빠라는 사람은 병원에 나타나서도 뻔뻔한 태도로 아동학대를 부인한다. 악마의 태연함과 잔인함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분노한다고 해서 악마에게 학대를 당한 아기의 상처를 되돌릴 수도 없고, 치료를 한 후에도 앞으로 아이의 인생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악마와 아기 사이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또 다른 악마는 의료진을 위협하는 사람들이다. 응급실 의료진은 환자 또는 보호자들의 폭언 또는 폭행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술에 취하거나 갑작스런 사고로 감정이 격양된 사람들이 많은 응급실은 난동과 폭언,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그 속에서 뺨을 맞고 욕을 먹으면서 환자를 치료한다는 것은 의료진에게 큰 모욕과 상처가 될 것이다. 환자가 최선의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안전한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 개선과 제도적인 안전망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남궁인의 지독한 하루

  생과 사가 치열하게 다투는 응급실의 이야기를 담은 <지독한 하루>를 읽으면 자연스레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살하려고 농약을 마시거나 차로 뛰어든 환자,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죽여 달라는 전신화상 환자, 어차피 완치되지 못하니 그냥 이렇게 죽어가겠다며 병원치료를 거부하는 환자, 가망이 없다는 병원의 말에도 끝까지 손녀를 포기하지 않는 할아버지.

  누군가는 죽음을 원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거부한다. 죽음을 정의하고 대하는 방식은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은 언젠가 죽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어떻게 죽음을 마주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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