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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책

  '걷는 듯 천천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 책이다. 그의 영화는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지만 그 속에서 작은 변주를 통해 큰 울림을 준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책은 2011년 5월 2일부터 7월 13일까지 니시니폰 신문에 실린 원고에 몇 편의 글을 더해 만들어졌다. 남의 차 앞에서 사진을 찍는 고레에다 집안의 독특한 가풍, 어린 시절 추억, 작품 연출에 대한 생각, 작품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오늘날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소신 등이 담겨있다.

  뻔할 것 같은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풀어내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 궁금해진다. '이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일까?'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걸어도 걸어도'에서는 나른한 여름날 유쾌하고 자상한 엄마와 가족들의 평범한 하루를 보여주다가 문득 엄마의 진심 한마디에 온몸이 굳어버리는 서늘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는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뀐 설정 때문에 영화가 부모의 선택에 집중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택보다 가족의 일상에 더 집중함으로써 부모와 자식이 보내는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는 아이들이 기적을 꿈꾸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역설적으로 기적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신 일상이 기적임을 알게 한다.  

바닷가-풍경
걷는 듯 천천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품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영화의 '메시지'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제나 시사회에서 '이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꼭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작품은 감독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그는 답한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지금 세 살인 딸이 열 살이 되었을 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세계는 풍요롭고, 일상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우며, 생명은 그 자체로 '기적'인 거야 그렇게 딸에게 말을 걸 듯 만들었습니다." (p29)

  작품을 만들면서 감독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다니 쉽게 이해가 안 되었다. 영화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시발점이 되어 영화가 만들어 지고, 감독은 관객들이 그 메시지를 알아주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옥자'의 봉준호 감독도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사회적 메시지 하나를 전달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감독은 메시지를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관객과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은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 힘을 내 주세요"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메시지의 주고받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가 전하러 가는 게 아니라 받으러 가는 것이다. (p22)

 

정답은 없다

  '나도 정답을 찾는데 익숙해진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tvN 알쓸신잡 6(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서 김영하 작가가 객관식으로 문학의 답을 찾게 하는 우리 국어 교육의 문제점을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문학은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 보는 것이지 작가가 숨겨 놓은 주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아니에요. 작가는 그런 걸 숨겨 놓지 않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중에는 그의 첫 장편영화 '환상의 빛'이 나에게는 메시지를 알 수 없는 어려운 영화였다. 그런데 에세이집을 읽은 후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만드는지 알고 '환상의 빛'의 대사, 장면들을 다시 떠올려보니 영화가 건네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책 '걷는 듯 천천히' 덕분에 앞으로 영화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존재하지 않는 정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고,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나의 감정에 집중해서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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