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바흐는 철학을 아주 근본적인 차원에 위치시킨다. 역사적인 텍스트들은 이러한 근본철학이라는 바탕 위에 존재하는 이차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롬바흐의 견해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은 사유하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글로써 책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텍스트는 철학을 눈에 보이도록 옮겨놓은 것일 뿐이다. 근본철학은 삶에서 유래하는데 그렇다면 근본철학의 근본은 무엇일까? 롬바흐는 ‘열려있음’이라고 말한다. 열려있음 즉 개방성을 통해 인간 행태를 개현하고 인간 형태는 이 열려 있음 안으로 들어섬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열려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자기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아닐까. 근본철학의 개방성, 열어 밝힘을 통해서 인간은 신, 세계, 인간에 대한 기투를 형성하는데 이것은 그때마다 역사적으로 시기적으로 열려 밝혀진다. 여기서 역사와 시기마다 근본철학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대별로 신, 세계, 인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근본철학은 그 전체는 변화하는 것이고 고정되어 있는 변하지 않는 근본은 없는 것일까. 이 물음에는 변화의 기준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다. 인식의 틀을 변화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근본철학은 신, 세계, 인간에 대한 기투를 통해 그때마다 새로이 열어 밝힌다는 점에서 인식의 기준, 근본의 구성체는 신, 세계, 인간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전체는 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전체를 구성하는 내용을 변화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같은 기준 아래서도 인식은 시대마다 끊임없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구성 내용이 바뀌었으니 전체도 변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전체라는 틀은 계속 유지되지만 개방성이라는 속성 때문에 시대마다 그 내용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때문에 근본 즉 전체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큰 틀 속에 변화의 속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근본 철학을 바탕으로 그 위해 텍스트로 존재하는 철학이 있는 것처럼 근본 전체라는 중심 위에 시대마다 다른 근본철학이 조금씩 변화하고 변경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같은 주춧돌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그 위에 지어지는 집의 모양이 달라지듯이 근본, 전체의 개방성과 변화가능성으로 인해 그 위에 존재하는 근본철학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