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대화의 희열> 마지막 손님은 외상외과 의사 ‘이국종’ 교수였다. 공교롭게도 유희열 MC가 진행했던 JTBC <말하는 대로>라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방송에도 이국종 교수가 게스트로 출연했었다. 이국종 교수는 자기가 끼어드니 또 프로그램이 끝나는 것 같다며 멋쩍어했다. "다 선생님 때문이에요~!"라는 농담에 그는 고개를 떨구고 희미하게 웃으며 말한다.
"제가 요즘에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 때문에... 주위 분들이 어려워지는 것 같고..."
이국종 교수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지쳐보였다. 2011년 아덴만에서 해적에게 피랍되어 총상을 당한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후 그는 우리나라 외상센터가 처한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데 앞장섰다. 더 많은 환자를 안전하고 신속하게 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뉴스에도 출연하고 광고도 찍고 최근에는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시스템은 한 발짝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언제 나아질지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장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팀원들과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뿐이다.
무전기도 지원받지 못해 응급상황에 출동을 하면서도 휴대폰 메신저로 연락을 한다. 300여 차례의 비행 중 43%가 야간비행인데 닥터헬기는 야간 비행을 할 수 없다는 운행규정 때문에 소방헬기에 부탁해 출동을 한다. 그마저도 비행 중 어떠한 사고가 있어도 손해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다고 한다.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의료진은 아무런 안전망 없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이국종 교수가 관련기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협조'라고 한다. "협조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부처가 달라서 협조가 안 됩니다" 협조가 안 되는데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찾아서 해결하는 것이 정상적인 시스템 아닌가? 애초에 시스템을 왜 만들었는지는 잊고 시스템 지키기에만 집착할 때 나타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을 고수하기만 하면 신경 쓸 일도 없고 돈도 더 들지 않고 편하다. 그런데 어릴 때 입던 옷을 성장한 어른이 되어서도 입을 수 있을까? 새 옷을 사러가기 번거롭고 돈도 아까워서 계속 입어야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꾸역꾸역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옷에 몸을 억지로 맞추다보면 여기저기 끼여서 몸이 아프고, 결국에는 옷도 찢어져 버린다. 옷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옷이 존재한다. 의료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료시스템이 존재한다. 무엇이 우선인지 무엇이 목적인지를 생각한다면 '협조', '시스템'을 방패막이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자신이 숭고하거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명문 구단으로 만든 명장 빌 벨리칙의 말을 인용한다. "Do your job (네가 할 일을 해라)" 윗사람, 여론, 이익 등에 흔들리지 말고 모두 그저 자기의 일을 했으면 하고 바란다. 물론 자기 일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