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 VS 하이에크
지난 100년 동안 세계의 경제이념전쟁은 케인즈와 하이에크의 대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사람의 대결은 정부와 시장의 대결로도 표현할 수 있다. 정부와 시장 중 어느 쪽이 경제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립이기 때문이다. 케인즈는 경제도 기계처럼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정부의 개입은 자유에 대한 위험이라고 보고 시장은 자기 조절능력이 있으므로 스스로 운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두 학자의 주장은 단순히 학자로서의 견해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세계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경제에 관한 이념은 1차 세계대전, 러시아혁명 후 러시아 경제, 미국경제, 2차 세계대전 후 경제문제 해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자유시장경제의 문제점이 보이면 정부의 규제를 주장하는 케인즈식의 경제이념이 대두되었고 지나친 규제가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면 자유경제이념에 힘이 실렸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 경제는 그렇게 흘러왔다.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은 의견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 사회에서 어느 한 쪽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이미 세계로 확대되었는데 시장의 자율에만 맡긴다면 이는 경제 무질서와 독과점, 빈익빈부익부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많은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그 속에서 힘없는 약소국들은 약한 경제력 때문에 주권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시장의 자기조절능력에만 의존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한다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이념이 퍼진 오늘날 시대 상황에 맞지 않을 것이다. 다국적기업, FTA 등을 통해 국가 간 기업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여기에 정부가 규제를 늘려간다면 반발도 많을 것이고 경제활동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이는 결국 국가의 경제발전을 정부가 막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되 커맨딩하이츠 즉, 경제의 핵심부분에 대한 정부의 역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은 공존해야한다. 무한한 자유는 오히려 서로의 자유가 충돌해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게 한다. 따라서 서로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 세계 시장 속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추구한다면 그 속에 규칙, 규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력이 약한 국가들이 성장 할 수 있고 강대국의 횡포도 막을 수 있다. 친구였던 케인즈와 하이에크가 지난 100년 동안 경쟁했다면 오늘날에는 손잡고 학문적으로도 진정한 친구가 되어야 할 때이다.
New Deal
케인즈의 경제이념은 미국의 뉴딜정책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호황을 누리던 미국경제가 주식시장 붕괴로 바닥을 치기 시작하고 실업자도 1500만 명을 육박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뉴딜정책을 발표했다. 이것은 정부와 국민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한 것이었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실시하여 건설경기를 부양시키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이로 인해 인건비가 시장에 공급되고 소비가 증가하고 내수를 증대시켜 불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뉴딜정책은 많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고 루스벨트를 4번이나 대통령 자리에 올려줬지만 사실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이지만 토목공사가 끝난 후 사라진 일자리로 실업문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뉴딜정책을 통해 루스벨트가 지지를 받았던 것은 미국 최초로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자본주의 도입 후 경쟁에서 패배해 시장에서 소외된 실업자, 노인 등의 생활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노동자의 권리도 보호하고 기업과 부자에게 부과하는 세금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세금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을 도왔다.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의 전진은 많이 가진 자들의 ‘부’에 더 많은 ‘부’를 주는 것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전진은 너무 적게 가진 이들에게 우리가 충분히 나누어 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단순히 경제를 일으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국민들의 삶을 일으키기 위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경제 문제에서 이익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증대된 이익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분배보다 일단 눈에 보이는 이익을 높이는 것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복지, 분배에 대한 고민 없는 성장은 경제적 양극 화를 심화시키고 사회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갈등과 분쟁이 많은 사회는 성장도 힘들다. 이런 악순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시장에 대한 바람직한 개입이 필요하다.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이 그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자유 경쟁 시장 속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규제, 제도가 필요하다. 특정 나라, 기업, 사람만이 이익을 누리는 것 즉 독과점을 막고 시장에서 발생한 이익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장과 정부가 경제적 주도권 싸움을 할 것이 아니라 균형을 맞추어야 할 때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다양한 원인으로 경제적 약자가 된 사람들을 위한 제도, 사회보장제도도 있어야 한다. 경제력 부족이 사람들의 생존 문제까지 위협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약자가 사회적으로도 약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기본적인 인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생활은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사회 갈등을 막고 더 발전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이다. 시장과 정부는 경제 주도권 싸움을 끝내고 공정한 경쟁과 이를 통해 발생한 이익의 분배를 위한 New Deal을 준비해야 한다.